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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전설] 왕지--王池
글쓴이 : 단풍 날짜 : 2009-07-17 (금) 13:44 조회 : 5829 추천 : 0 비추천 : 0

무송현의 천지림장에서 서쪽으로 10리쯤 가면 반쌍 가량되는 늪을 발견하게 된다. 크지도 않은 이 늪에다 어찌하여 임금 왕()자를 붙여서 왕늪(王池)이라고 이름을 지었는가?

 

 옛날, 백두산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는 노자라고 부르는 아이가 있었다.  그 얘네 집안살림은 동네에서 구차하기로 말이 아니였다. 한끼니를 먹고나면 다음  끼니거리가 없어서 근근득식으로 연명해나가고 있었다. 노자는 이런 가세를 일으켜세워 보려고 마을사람들이 인삼 캐러 떠날 때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허나, 인삼캐러 가는 사람들은 나어린 노자를 누구도 데리고  가려 하지 않았다.

"안데리고 갈라면 말라지. 혼자 가면 되지. 히히."

인삼을 눈빗질이나 하여보았을뿐 어떤 곳에서 자라는지도 모르는 노자는 이렇게  혈혈단신으로 인삼캐러 떠났다. 노자는 낮이면 숱한 심산계곡을 누비며 인삼을 찾아다녔고 저녁이면 수림속에다  어수선한 풀막을 대충 쳐놓고 밤을 새웠다. 아침에 깨어나면 옷이 후줄근히 젖었고  온몸이 지끈지끈했다. 노자는 그런 고통 속에서 몇날 몇밤을 지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그는 인삼을 캐기는커녕 도리어 병만 얻게 되였다. 전신의 뼈마디가 모질게 쑤시고 어깨는 잘 놀릴수 없었고 두 다리는 뻣뻣해지면서 일어서기조차 어려웠다. 심산 속인지라 병이 나도 의사를 보일수 없었고 약을 달여먹으며 치료할수도  없었다. 그런데 병은 날이 갈수록 가중해지여 더는 걸을수 없게 되였다.

 

노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리웠고 그 헐망한 초가집이 그리웠고  조무래기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목놓아 엉엉 울었다.  아무리 울고울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도 없는데 내가 왜  울기만 한단 말인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노자는 울음을 뚝 그쳤다.  (울게 뭔가? 울지 말고 가자. 기어서라도 집으로 가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가 날 기다리신다!)

 

노자는 죽더라도 집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기기 시작하였다. 배고프면  산열매를 따먹고 목이 마르면 샘물로 목을 추겼다. 그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송글송글 내돋혔다. 그래도 그는 기고 또 기였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손과 발은 터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얼굴은 살이 빠져 나무로 깎아 만든 강마른 목상 같았다.

 

갈 길은 먼데 맥이 빠져서 그는 더는 길수 없게 되였다. 눈앞에서 무수한 불꽃이  튕겼다. 인적이 없는 괴괴한 수림속에서 노자는 몽롱한 혼미상태에 빠지여 조용히 누워있었다. 갑자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노자는 간신히 머리를 돌리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길이가 10여발이나 되고 굵기가 절구통같은 징그러운 구렁이가 그의 옆으로 구불구불 기어오고 있었다.  깜작 놀란 노자는 두눈을 펀히 뜨고 구렁이에게 먹힐 생각하니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노자는 두눈을 꼭 감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의 곁에 기어온 구렁이는 몸뚱이로 노자를 휘휘 감으면서 잡아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 별난 놈이야.) 하도 이상스러워 노자는 눈을 뜨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보통구렁이가 아니었다. 대가리아래에는 짧은 날개 두개가 돋쳤고 배 밑에는 이발처럼 날카로운 발가락이 달린 다리가 네개나 나 있고 넙적넙적한 비늘은 연한 금빛을 뿌렸다.

 

노자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던 금룡의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만약 금룡이 아니고 구렁이라면 얼른 날 잡아먹을거야. 이건 구렁이가 아니라 진짜 금룡이야. 노자가 눈을 뜨자 금룡은 대가리를 동남방향으로 쭈뼛이 세우고 세번 찔룩찔룩하였다. 노자는 단김에 삼키울것만 같아서 후들후들 떨면서 "!"하고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신이 들고보니 일장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노자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저 꿈 같지 않았다. 금룡은 어째서 동남방향으로 세번이나 대가리를 찔룩거렸을까? 금룡이 날 도와주려고 그랬는지도 몰라. 나를 동남방향으로 가라고 그래잖을까? 죽든살든 힘자라는 때까지 가보자. 노자는 이를 악물고 몸을 버득거리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전혀 길수 없어서 늘어졌던 몸이였는데 다시 길수 있었다. 그는 동남방향으로 기고 또 기어 펑퍼짐한 둔덕을 넘어섰다.  평탄한 초원이 나타났다. 초원중간에 이른 그는 너무도 맥이 진해서 하늘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하늘에는 흰구름이 뭉개이고 있었다. 그런데 흰구름 속에 금룡이 꼬리를 두리우고 있지 않은가! 눈이 미심쩍어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아도 구름속에 금룡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느새 금룡은 노자의 곁에 내려와서 똬리를 슬슬 트는것이었다. 똬리를 다 튼 다음 꼬리로 땅을 툭툭 치니 구덩이가 생겨났고 구덩이에서는 맑은 물이 콸콸 솟아올랐다. 눈넓게 퍼지면서 하나의 늪을 이루었다. 노자는 갈증이 나던지라 눈앞의 물을 정신없이 들이켰다. 노자가 물을 다 마신  것을 본 금룡은 꼬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무리 보아야 자기의 등에 업히라는 수작인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업히고 보자.)  노자가 금룡의 등에 업히자 금룡은 물속으로 헤염쳐 들어갔다. 참 신비한 일이었다. 물이 두 쪽으로 쫙 갈라지면서 반듯하고 환한 길이 났다. 노자의 몸에는 물 한방울도 묻지 않았다. 노자는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나면서 맥이 싹 풀렸다. 그는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금룡의 등허리에서 떨어져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한참 후 노자는 자기 입안으로 무엇이 굴러들어오는 듯한 감촉을 느꼈다. 그는 눈을 가슴츠레 뜨면서 그것을 뱉어 버리려 하였으나 그것은 도리어 목구멍으로 꿀떡 넘어갔다.  배도 고프지 않고 정신도 맑아지고 팔과 다리에 힘이 솟구쳐 올랐다. 원기도 회복하였다. 노자는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나서 금룡한테 감사를 드리려 하였다. 그러나 금룡은 보이지 않고 눈앞에는 거울같은 늪이 펼쳐져있었다. 

 

 마을에 돌아온 노자는 5,6월의 물외 자라듯이 우썩우썩 자라났다. 한달이 지나니 그의 키는 9자나 되었고 힘도 무진장하였다. 열사람이 함께 들지도 못하는  바위돌도 그는 훌쩍 들어서 뿌리쳤다. 노자가 장수로 되였다는 소문은 사방에 퍼졌다. 나라에서는 그를 불러다 외적의 침략을 물리치는 우두머리를 시켰다. 싸움에서 노자는 2, 30명쯤은 식운죽먹기로 제꼈다.

 

한번은 싸움에서 거의 패전하게 되었다. 최후 판가리싸움시각에 노자는 하늘을  우러러 금룡에게 빌었다.

 "금룡이시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그대 만약 나의 목소리를 들으신다면 다시 한번 이 노자의 앞길을 헤쳐주옵소서!"

 노자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적진의 머리 우에서 우뢰가 울고 적들이 발 밑에서 광풍이 일더니만 주먹같은 우박이 적의 진지에 사태처럼 쏟아져내렸다. 적들이 혼란에 빠지자 노자는 군사를 일으켜 일망타진하고 대승리를 하였다.

 

그후에 노자는 왕으로 되었다. 왕이 된 그는 첫행사로 백두산에 가서 조상들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였고 둘째로는 자기의 목숨을 건져주고 왕이 되게끔 앞길을 틔워준 금룡을 찾아가서 큰 잔치를  베푸는것이었다.  첫번째 대사는 쉽게 치렀지만 두번째 대사는 치르기 여간만 어렵지 않았다. 망망한 백두림해의 어느 곳에 가야 자기를 살려준 금룡과 그 늪이 있는지 알길이 없었다.

 

 노자왕은 보름이 지나가고 달포가 지나가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신하들은 임금의 신상이 염려되여 이렇게 간청하였다.

"임금님, 너무 오래 머무르면 옥체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나이다. 훗일 다시 찾아보도록 함이 옳은줄로 아옵니다."

"짐의 목숨을 구해주고 앞길을 밝혀준 은인을 찾는 일인데 요만한 고생이 다 뭐냐? 짐은 꼭 그 늪을 찾아서 금룡한테 인사를 올려야겠다. 백골난망의 혜택을 입고서도 인사도 없다면 짐이 어떻게 임금질하겠느냐?"

임금의 신하들은 사방팔방으로 다니며 석달 열흘만에야 그 늪을 겨우 찾아냈다.   임금은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자기와 함께 무릎을 꿇게 한 다음 두손을 맞잡고  늪을 향하여 감격을 토하였다.

"금룡님이시여, 은인이시여! 그대를 찾아서 인사하러 왔나이다. 이 몸이 부서지는 경난을 겪더라도 그대를 한번 보았으면 원이 없고 최대의 행복으로 알겠나이다.!"

 
임금의 말이 끝나자 물속에서 하얀 물기둥이 솟구치더니만 금룡이 머리를 쑥 내밀고 세번 끄덕인후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임금은 늪가에서 굉장한 잔치를 베풀고 술을 늪에다 부으며 사흘동안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돌아올 무렵 신하들은 이 늪의 이름을 임금께서 지어야 한다고 권하였다.  임금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금룡은 이곳에서 짐을 구하였고 신하들과 백성들은 짐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노라.  금룡이 없었다면 이 늪이 있을 수 없고 짐의 오늘이 어찌 있을고. 이 늪을  '왕늪'이라고 함이 좋을지어다."  신하들은 모두 임금의 말이 지당하다고 찬성하였다. 그때부터 크지도 않은 이 늪을  왕늪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진귀철로부터 무송현 무송진에서 85 7  리천록, 최룡관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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