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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전설] 신선꽃사슴
글쓴이 : 백두산 날짜 : 2009-07-15 (수) 15:44 조회 : 6441 추천 : 0 비추천 : 0

옛날, 백두산에는 목에다 금패와 은패를 건 신선꽃사슴이 있었다 한다. 이곳의 추장은 꽃사슴을 잡아서 일확천금을 해보려고 해마다 사냥군들을 산으로  보내곤 하였다. 그러나 사냥군들은 번마다 헛물만 켜고 돌아왔다.

백화만발한 꽃밭에서 꽃사슴이 뛰노는 것을 보고 달려가면 꽃사슴은 겁도 먹지 않고 태연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잡으려고 하면 껑충껑충 뛰어가곤 하였다. 그래서 활을 쏘면 화살이 꽃사슴을 피하였다.

그때 백두산에는 대걸이라는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대를 이어 종살이를 하는 그는 나이 30이 되도록 장가도 들지 못하였다.

하루는 그가 깊은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가 함정에 빠진 새끼사슴을 발견하였다. 그는 함정속에 뛰여들어가서 새끼사슴을 구하였다. 함정에 며칠이나 갇혀있었는지 새끼사슴은 비틀거리며 바로 서지도 못하였다. 측은한 생각이 든 대걸총각은 새끼사슴을 안고 샘물터를 찾아갔다. 그는 자기가  지니고 온 쌀가루를 물에 풀어서 한숟가락씩 새끼사슴에게 먹였다.

대걸총각이 지니고 간 음식을 다 먹은 새끼사슴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나는 백두신령의 후예인 꽃사슴의 딸이예요. 부모들 모르게 나와서 뛰놀다가 그만 봉변을 당했어요. 이 태산같은 은혜를 부모님한테 이야기하고 꼭 갚아드리겠어요."
"이게 무슨 은혜라고 그러느냐?"
"어려워마시고 소원을 말하세요."
"네 몸이나 조심하여 부모들을 찾아가거라."
대걸총각은 새끼사슴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다 보았다.새끼사슴은 가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듬해 봄이었다. 대걸총각이 백두산기슭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데 꽃사슴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어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하고 꽃사슴이 인사하였다.
대걸총각은 어안이 벙벙했다.
"작년에 함정에 빠졌던 새끼사슴이예요."
그제야 대걸총각은 "오, 그렇냐? 몰라보게 컸구나!"하면서 꽃사슴의 등허리를 도닥여주었다.
"지금 저 봇나무숲 속에서 한 여인이 헤매고 있어요. 그 여인이 바로 아저씨 천생배필이예요. 그리 아시고 살뜰히 보살펴주세요."
꽃사슴은 어떠냐는 듯이 두귀를 쫑긋거렸다.
"고생하는 사람을 돌봐주는 건 응당한 일이지만 천생배필이란 웬 말이냐?"
"아저씨, 천생배필은 하늘도 막지 못한 대요. 빨리 가보세요."
꽃사슴은 춤이나 추듯이 껑충껑충 뛰어갔다.

아무튼 산속에서 여인이 헤매고 있다 하니 가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걸총각은 꽃사슴이 가리켜주던 봇나무숲으로 달려갔다. 한참이나 찾아서야  골짜기 밑에 누워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다.
"그대는 누구시온데 이런 외진 곳에 홀로 있나이까?"
대걸총각이 조심스럽게 묻자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였다.
"나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부자집 종으로 있었나이다. 부자놈에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병신아들이 있사온데 나를 그자식의 첩으로 되라고 핍박하지 않겠나이까?  나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딱 잡아떼었나이다. 어제밤엔 나를 끌어다 강제로  병신 방에 가두었나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순응하는 체 하다가 밤중에 뛰쳐나와서  죽기살기로 도망쳤나이다. 금방 마을을 벗어나니까 난데없는 꽃사슴이 앞길을 가로막고 나를 여기까지 태워다주었나이다. 꽃사슴은 나를 내려놓고 이런 말을  하였나이다. '여기에 대걸이라는 총각이 있어요. 그에게 의탁하면 복을 받을 거예요.' 그런데 사슴 등에서 밤을 새우다보니 이렇게 지쳤나이다."
대걸총각은 속이 섬찍했다. 이 여인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가  아닌가! 대걸총각은 일부러 모르는체하고 넌지시 물었다.
"그 대걸총각을 어떻게 찾겠나이까?"
"그인 지난 봄에 꽃사슴을 구해준 은인이옵니다."
분명 자기였다. 꽃사슴이 이미 다 알려주었는지라 대걸총각은 솔직하게 자기의  신분을 밝혔다.
 여인은 대걸총각에게 절을 올리며 당돌하게 입을 열었다.
"그대와 나는 모두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의탁할 곳이 없는 처지옵니다. 천한 계집이오나 거두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나라는 사람은 빈털터리오이다. 어찌 한평생 고생하며 살겠나이까?"
"부끄럼을 무릅쓰고 속마음을 말했사오니 방자하다고 나무라지 마옵소서. 그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내가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가오리까?"
대걸총각은 실 한오리 보태줄 것이 없는 자기를 따르려는 여인의 신세가 가련하고 고마웠다. 

대걸총각이 꽃같은 색시를 얻었다는 소문을 들은 추장은 마음이 근질거려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어슬렁어슬렁 대걸총각의 움막 앞까지 온 그는 마당 가에 있는 아름드리 버드나무 뒤에 숨어서 색시를 훔쳐보았다. 색시는 비록 수수한 종옷을 걸치기는 하였으나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추장은 눈이 퀭해서 색시가 움막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당장 빼앗아가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일었으나 소문이 시끄러워 꾹 참았다.

이튿날 추장은 대걸을 불렀다.
대걸이 오자마자 추장은 발광하였다.
"네 이놈, 정신이 있냐? 우리 집에 와서 20년이 넘도록 공밥을 처먹으면서도  조상이 물려준 빚은 한잎도 갚지 않고 그 주제에 색시까지 얻어들여 주둥이가 하나  더 늘어났으니 빚도 늘겠지. 당장 빚을 물어. 그렇지 않으면 신선꽃사슴을  잡아바치든지 색시를 바치든지 해!"
맑은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이라 대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신선꽃사슴은 어떻게  잡으며 색시는 또 어떻게 바친단말인가?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응답하지 않았다.
"사흘 내에 집행하지 않으면(옆구리에 찬 칼집을 두드리면서) 이놈의 맛을  보여주겠다."
 어느 령이라고 거절하랴. 종이라면  파리잡듯하는 추장이 아닌가. 대걸이 이날  이때까지 무사히 살아 남은 것도 남보다  힘이 장사여서 부려먹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대걸은 벙어리 랭가슴 앓듯  혼자 속을 썩이였다. 랑군의 기색이 좋지 못한 것을 본 색시는 머리를 숙이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삽기로 그러하옵니까?"
그가 무슨 방법이 있으랴싶어서 대걸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한숨만 쉬였다.
"낭군님, 우리 언약을 맺을 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으면서  인생고락을 함께 겪자고 맹세하였사온데  무슨 연고가 있사옵기에 홀로 속을  썩이오니까?"
대걸은 할 수 없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나서
"무슨 수로 사흘안으로 빚을 갚는단 말이요. 팔자도 기박하지."하고 구들장이 꺼지게 한탄하였다.
대걸의 말을 듣고 색시는 겁에 질려서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마치 그 누가 당장  빼앗아가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밤을 새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하소연할 곳이 없는 그들의 눈물은 한탄과 증오, 비애와 비분의 상징이었다. 어떻게 하면 고비를 넘길가고 궁리하던 색시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낭군님, 꽃사슴한테 찾아가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사옵니다."하고 아뢰였다.


별수 없는 그들은 백두산에 가서 신선꽃사슴을 찾았다. 구명은인을 만난 꽃사슴은  여간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연분을 맺어준 꽃사슴에게 인사를 올리고 찾아온 일을 이야기하였다.
"근심도 하지 말아요."하고 꽃사슴은 시름을 놓게 한후 여차여차하라고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대걸은 추장을 찾아갔다.
"래일 신선꽃사슴을 산채로 잡아서 바치겠나이다. 짐군 네사람을  딸려주옵소서."
"정말이냐?"
"제가 나으리를 감히 속이겠나이까?"
"무슨 방법으로 잡을테냐?"
"그건 묻지 마옵소서. 조상때부터 진 빚을 몽땅 갚았다는 증서나 하여주옵시면  감사하겠나이다."
"네 이놈, 큰 소리 작작 쳐. 잡아오지 못하면 색시는 내거다. 알 만하냐?"
"장부일언이 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이란데 어찌 한입으로 두가지 말을 하겠나이까!"
"좋다. 문서장을 만들고 서로 담보하자. 여봐라. 문서장을 써올려라."
문서장은 곧 작성되었다. 서로 대방의 담보서를 품에 간직하였다.

대걸의 색시는 떼먹은거라고 생각된 추장은 절로 너털웃음이 나왔다. 신선꽃사슴, 고운 색시가 모두 제 손아귀로 들어오게 될 것이 아닌가!"

이튿날, 추장의 짐군들은 대걸을 따라서 백두산으로 올라갔다. 하얀 봇나무들이 꽉  들어선 기슭에 신선꽃사슴이 서있었다. 대걸은 화살을 겨냥하여 힘껏 당겼다가  놓았다. 화살은 꽃사슴의 정갱이를 꿰뚫고 지나갔다. 꽃사슴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짐군들은 우야 달려갔다. 그들은 신선꽃사슴의 네다리를 꽁꽁 묶어가지고 함께  메고 마을로 돌아왔다. 추장네 울안은 신선꽃사슴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꽉 찼다.

신선꽃사슴의 목에서는 금패와 은패가 황홀한 빛을 뿌렸다. 대번에 돈가리에  앉게 된 추장은 배를 쑥 내밀고 신선꽃사슴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의 눈길에는 음흉한 빛이 번뜩였다. 대걸이 신선꽃사슴을 산채로 잡아오면 밤에 가만히  잡아치우고 백두신령을 해친 죄를 대걸에게 들씌운 후 그를 죽이고 색시를 채려  하였던 추장이였다. 일이 뜻대로 척척 풀려가니 큰 주연을 차리고 경사를 축하하였다.
"대걸이 큰 공을 세웠네. 나는 말한 대로 하겠네"하고 추장은 큰소리치면서  대걸에게 술사발을 권하였다.

밤중이 되었다.
추장의 령을 받들고 신선꽃사슴을 죽이러 들어갔던 백정들이 "불이야!"하고  아우성치며 뛰어나왔다. 글세 사슴의 눈에서 불꽃이 튀더니 사슴의 온몸이 불길로 활 번져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길을 안은 신선꽃사슴은 자기를 가두어놓은 참나무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서  추장네 지붕 위로 올라갔다. 신선꽃사슴이 데굴데굴 구르니 지붕 위에서는 삽시에  삼단같은 불길이 솟구쳤다. 불길은 씽씽 날아가서 추장네 창고까지 삼켜버렸다. 미처 잠을 깨지 못한 추장네 식솔들은 죄다 재무지로 되고 말았다.

마음씩 착한 대걸네 부부간은 불을 지르고 온 꽃사슴을 안고 감격에 젖어서 눈물을  흘렸다.

 -백태준으로부터 안도현 복흥에서 66년 2월  리천록,최룡관(연변)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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