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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와천지] 천지속 룡궁
글쓴이 : 단풍 날짜 : 2009-07-07 (화) 16:31 조회 : 6231 추천 : 0 비추천 : 0

천지속의 룡궁
 
장백폭포에서 하얗게 떨어져서 흘러가는 강물을 끼고 어느 한 언덕에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앞에는 백하수요 뒤에는 청산이라 보기에는 오붓한 초가집이지만 이 집에는 한 불행한 가정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은 장우라 부르고 동생은 바우라 불렀다. 형은 열다섯 살이고 동생은 열두 살이라 살림도 꾸려나가기 어려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바우는 중병에 걸려 누워있었다.

장우는 바우의 병을 낫게 하려고 산에 가서 약을 캐오고 외지에 가서 의사를  청해오는 등 무진 애를 썼지만 동생의 병은 좀처럼 나을 줄 몰랐다.

피기라곤 없이 빼빼 말라지는 동생의 모습을 볼 때면 장우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장우는 동생의 병시중을 들다가도 가끔 어머니가 생각나서 망연해지곤 하였다. 어머니가 계실 때에는 그도 응석둥이라 밖에 나가 뜀질하다가 배가 고프면 집에 달려와서  '어머니, 배 고파요.' 하고 소리치면 어머니는 먹을 것을 주었던 것이다.

'아이구!'  바우는 갑자기 신음소리를 크게 내였다.  장우는 동생이 덮은 누더기를 바로잡아주고는 또다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의  눈에서는 방울방울 맑은 눈물이 떨어졌다. '얘야, 난 인제... 틀렸다. 넌 동생을.... 잘.... 보살펴라....' 유언을 남기던 어머니 얼굴이 선하게 떠올랐다.

어느덧 밤중이 되였다.  장우는 졸음이 와서 견딜 수 없었다. 눈두덩이가 천근처럼 무거워졌다.... 어머니가 오셨다. 인자한 얼굴로 오셨다. 어디서 얻었는지 새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으셨다. 바우 곁에 다가선 어머니는 바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측은한 눈길로 바우를   내려다보았다.
 '네 병을 떼려면 백두산천지의 룡궁에 가서 약을 얻어와야 한단다. 그런데 나이어린  장우가 어떻게 가겠느냐?'  어머니는 천천히 장우한테로 돌아섰다.
 '어머니, 내가 왜 어리다고 그래요. 길만 알려주세요. 얼마든지 갔다올 수 있어요.'
 '그래, 우리 장우가 장하지.'   깨여 보니 꿈이였다.

장우는 밖에 나가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이 도글도글 여물었다. 동녘이 푸름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날이 밝자 장우는 천지를 향하여 떠났다. 하늘엔 꽃구름이  흘렀다. 나무에선 새들이 지저귀었다.

장우는 어머니가 생전에 어디로 해서 가야 백두산으로 갈 수 있다던 말이 생각나서  곧추 그 방향으로 갔다. 들판도 지나고 가시덤불도 헤치고 강도 건너고 산도 넘었다.   바지가랭이와 옷소매가 여러군데 찢어졌다. 팔과 다리의 여러 곳에 생채기도  생겼다.   온통 바위천지인 벼랑이 앞길을 막았다. 어떻게 벼랑을 넘어갈까 하고 궁리하며 길을 찾았다. 한 곳에 좁다란 오솔길처럼 길이 틔어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실로 그랬다. 벼랑기슭에서 숨을 돌리며 땀을 들인 장우는 벼랑길에 달라붙었다.

'벼랑에 오를 땐 아래를 보지 말아야 하느니라.'라고 하던 어른들 말이 생각나서  장우는 벼랑꼭대기에만 눈길을 팔며 한발자국 두발자국 톺아올랐다.

한참 기어오르던 장우는 길을 따라 가로질러 나갔으나 길이 막혔다. 벽처럼  깎아지른 벼랑이 여남은 발 너비로 섰는데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것만 넘으면 앞길이 환하였다.

장우는 속이 바질바질 탔다. 뛰어도 못넘고 날 수도 없지, 그러나 죽으나 사나 넘어야 할 천험이였다.  장우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늘에 대고 두손을 싹싹 빌면서 애원하였다.

'하나님이시여, 내 동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내 앞에 길을 내여주시옵소서!'

장우가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하늘에서 학 한 쌍이 날아 내려오고 있었다. 학들은 기다란 주둥이에다 새하얀 바오라기를 한끝씩 물고 내려왔다.  양켠에 제각기 내린 학들은 바오래기 끝을 바위에 놓고 부리로 똑똑 쪼았다. 그리고는  기다란 다리를 껑충거리다가 서로 날아갔다 날아왔다 하였다. 눈깜짝할 사이에 옥석교가  생겨났다. 이 모든 것을 눈이 휘둥그래져 지켜본 장우는 너무도 기뻐서 하늘에 대고 연신  절을 올렸다. 

옥석교를 건너서 천지가에 이르니 온통 눈세계였다. 천지는 은으로 둘레를 두른 둥그런 거울 같았다.   장우는 룡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디에 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며 천지가를 거닐었다. 그러던 그는 눈 속에서 뒹구는 빨간 잉어를 발견하였다. 언제부터 뒹굴었는지 잉어는 기진맥진하여 아가미만 펄쩍펄쩍하였다.
'이놈은 왜 여기서 고생하나?'  장우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잉어를 두 손으로 받들어 천지 속에 넣었다. 잉어는 헤염쳐가다가 세 번이나 돌아와서 물우로 펄쩍 뛰여올랐다. 그리고는 둥그런 원을  그리며 느릿느릿 돌오가던 잉어는 꼬리로 찰랑 물을 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우는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글쎄  천지 속으로 들어가는 돌층계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는가! 돌층계는 천지 밑까지 깊숙이 뻗어있었다. '룡궁으로 들어가는 돌층계일지도 몰라. 한번 들어가보자.'
장우는 천천히 층계를 내리 디뎠다. 얼마나 깊게 내려섰는지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주위에선 고기들이 유유히 헤염치고 있었다.

천지 밑에는 수정으로 지은 웅장한 궁궐이 있었다. 궁궐에는 큰 대문이 나있었고 대문 양켠에는 푸르싱싱한 룡뇌나무가 서있었다. 그 나무 밑에는 룡검을 든 무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보초병들의 얼굴은 사람과 비슷하였지만 머리에는 뿔이  나있었고 허리에는 은회색날개가 달려있었다. 장우는 이러한 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자, 가자요.'
갑자기 처녀의 맑은 목소리가 정답게 들려왔다. 온몸이 연분홍색깔인 처녀가 생글생글 웃고 있지 않는가.
 '저어...'
 '호호... 전 빨간 잉어래요. 우리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셔요.'
 처녀는 장우의 옷자락을 허물없이 잡아끌었다. 처녀는 푸른 세계에 홀로 피여난 한송이 련꽃처럼 고왔다.

장우는 연분홍처녀를 따라서 룡궁 안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이따금 둥둥 북소리도 들려왔다.  궁궐 복판에는 수염이 가득한 룡왕이 룡상에  앉아있었다. 코밑수염은 좌우로 갈라져 양볼로 구불구불 올라 뻗어서 뿔에  걸려있었고 턱수염은 가슴을 가리웠다가  다시 뻗어 올라서 어깨를 덮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로 올라간 것은 붉은 수염이고  왼쪽어깨로 올라간 것은 흰수염이였다.

으리으리한 궁궐, 엄엄한 룡왕을 처음으로 마주한 장우는 겁이 나서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무서워말아요. 아버지세요.'  연분홍처녀가 옆구리를 툭 다치며 일깨워주어서야 장우는 시름을 훌 놓았다.   룡왕 앞으로 사뿐사뿐 다가간 처녀는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분이 저를 구해주셨어요.'
룡왕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하였다.
'공주를 구해준 그대에게 감사를 드리오.'  룡왕은 만면에 웃음을 짓고 룡상에서 내려와  장우의 팔을 잡고 옆칸으로 들어갔다.

옆칸은 연회청인데 벌써 룡궁의 산해진미가 풍성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룡왕은 왼쪽에 딸을 않히고 오른쪽에다 장우를 않혔다.  연회상에 마주 앉았으나 장우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왜 자시지 않나요?' 공주가 물었다.
장우는 일어나서 룡왕에게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용왕님, 지금 제 동생 바우가 생사를 다투고 있나이다.'  이렇게 허두를 뗀 장우는 룡궁까지 오게 된 사연을 처음부터 쭉-- 이야기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난 룡왕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룡왕은 그 자리에서 붉은 수염 한오리와 흰 수염 한 오리를 뽑아서 장우의 손에  쥐여주면서  '이것을 갖고 가면 꼭 쓸모가 있을거네. 동생의 병을 뗄 약은 얘가 갖다줄거네.'   장우는 너무도 기뻐서 연회가 어느새 끝났는지도 몰랐다.

공주는 장우를 바래면서 윤기 반드르르한 노랑버섯 세송이를 주었다.  '이것을 하루에 한 송이씩 달여 먹이면 동생의 병이 인차 떨어질거예요.'

장우가 돌아오는 길은 아주 순조로왔다. 강을 만나면 다리가 있고 벼랑을 만나면  평탄한 길이 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장우는 룡왕한테서 선사받은 수염을 궤짝 안에다 넣고 인차 약을  끓였다. 동생한테 약을 한번 먹였더니 얼굴에 피기가 돌고 약을 두 번 먹였더니 일어나 앉고   약을 세 번 먹였더니 밖에 뛰어나가서 '형님, 형님!'하고 퐁퐁 뛰였다.

동생의 병이 가신 듯이 사라지자 장우는 천근 짐이라도 부린 듯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는 동생의 병을 뗄 약을 주던 룡왕이 생각나서 궤짝문을 열었다. 룡왕의 수염은 간 곳이 없고 금 한 가락과 은 한 가락이 빛을 뿌리고 있지 않는가!

장우는 바우를 불러들여 이 기쁨을 낱낱이 이야기하고 무릎을 꿇고 천지용왕에게  절을 올렸다.

- 남은철로부터 안도현 이도백하에서 78년 5월  리천록(연변)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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