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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와천지] 천지전설
글쓴이 : 단풍 날짜 : 2009-07-07 (화) 16:07 조회 : 6716 추천 : 0 비추천 : 0

밭에서 오곡이 무르익고 강에선 고기떼가 헤염치고 산에선 새와 짐승들이 득실거리는 옛날, 풍요하고 살기 좋은 곳이 있었으니 그 고장이 바로 백두산 일대에 자리잡은 오붓한 마을들이였다.

그런데 세상일은 복잡하기 마련이고 길흉은 서로 다투기 마련이여서 평화롭고 행복하던 여기에 일대 재난이 덮쳤다. 하늘에 심술사나운 흑룡이 나타났다. 검은 구름을 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흑룡은 불칼을 휘둘러 이골저골의 물곬을 지져놓았다. 곡식들이 노랗게 말라들었고 나뭇잎이 쪼글쪼글해졌다. 밭이란 밭은 터갈라져서  거미줄을 늘인 듯하였다.

사람들은 성이 백가라는 장수를 모시고 왕가뭄과 싸웠다. 샘물줄기를 찾느라고 숱한 사람들이 떨쳐나섰다. 괭이소리, 삽질소리, 메질소리가  밤낮으로 울려퍼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샘물줄기를 찾아내였다. 콸콸 솟구쳐오르는 샘물을 보고 사람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들이 금방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청천 하늘에 먹장구름이 덮였다.  번쩍번쩍 번개치고 우릉우르릉 우뢰 울고 쏴--쏴 광풍이 휘몰아쳤다.  샘물줄기를 찾아놓은 뒷산 벼랑이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광풍은 집채같은  바위돌들을 가랑잎 날리듯하여 샘물줄기를 덮어놓았다.

날이 개자 남녀로소가 달려나왔다. 해볕에 등허리를 지지며 이를 악물고 파놓은  샘물터가 눈깜짝할 사이에 돌산으로 변한 것을 보고 녀인들은 눈물을 머금었고 장년들은 한숨을 내쉬였다.

'아이유, 못살 때를 만났구려!'
'흑룡의 조화를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이요. 기가 딱 막히오.'
 여기저기에서 실망에 찬 한탄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때 바위에 걸터앉은 한 사람만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몸집이 떡구유처럼 우람찬 그는 키가 구척이나 됐다. '헤이 씨!'하고 그는 울분을  토하며 일어나서 제앞에 있는 바위를 툭 찼다. 망짝같은 돌이 고무공처럼  채어나갔다. 그가 바로 백장수였다.
 '백장수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돌아서니 가산을 꿍져진 이사군들이었다.
'암만 생각해도 살길을 찾아 떠나야겠수다.'
 백장수는 눈물이 글썽해져 그들의 손을 잡고 말을 하였다.
'좋을대로 하소이다. 이 백가가 이렇듯 맥을 못추니 더는 만류할 수 없나이다.'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가기 시작하였다.  백장수는 바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아아! 이를 어쩌노?'하고 머리를 싸쥐였다.

이때 그의 앞에 아름다운 공주가 나타났다.
'공주님께서 어이하여 이 위험한 곳으로 오셨나이까? 어서 피하소서.'
백장수는 허리를 급혀 절을 올리였다.
공주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대가 물을 찾자고 싸우는 일편단심이 감천하였나니 적은 힘이라도 이바지하려고  찾아왔나이다.'
이렇게 화두를 뗀 공주는 지난밤에 꿈을 꾼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밤에 금방 잠들었을 때였나이다. 하늘에서 칠색무지개를 정원에 드리우지   않겠나이까. 무지개에 취하여 멍하니 서있는데 하얀 옷을 입은 늙은이가 금막대기를 짚으며 오셨나이다. <안녕하옵나이까?>하고 공손히 인사를 드렸더니 <난 하늘의  신선으로서 그대에게 전할 일이 있어서 왔노라. 지금 흑룡이 백두산일대의 물줄기를 지져놓아서 왕가뭄이 들었노라. 백장수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우물을 파며 물줄기를  찾고 있노라. 그런데 그의 힘이 아직 흑룡을 당할 수 없노라. 그가 흑룡을 이기려면  백두산에 있는 옥장천의 샘물을 석달 열흘 마셔야 하느니라. 이건 너의 나라의 일이므로 네가 알려야 하노라.> 신선은 금막대기를 휙 젓더니 사라졌나이다.  깨여나니 꿈이였나이다. 그래서 백장군을 찾아왔나이다.'
'공주님, 고맙소이다. 소인에게 옥장천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길 바라옵니다.'
'우리 함께 가사이다.'

그리하여 공주는 백장수를 데리고 옥장천으로 떠났다.  공주는 책이나 보고 그림이나 그리고 거문고 따위나 뜯는 아씨가 아니였다. 길을  가다가 깊은 계곡을 만나면 훌훌 날아넘었다.  백장수는 공주의 재간에 탄복하면서 그를 따라 사흘동안 걷고 걸었다. 얼마나 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왔는지 아무도 몰랐다.  깎아지른 벼랑이 앞길을 막아서서   백장수네는 걸음을 멈추었다. 벼랑밑에서는 옥같은 샘물이 볼롱볼롱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 샘물이 옥장천이오이다.'  백장수는 옥장천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샘물가에 엎드렸다. 그는 단숨에 다   마시기라도 할 듯이 꿀꺽꿀꺽 들이켰다.   물을 마시고 백장수가 일어서자 공주는 '석달 열흘이 차는 날 다시 오겠나이다.'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공주가 떠나가자 백장수는 벼랑가에다 작은 막을 치고 쉴새없이 샘물을 마셨다. 과연 석달 아흐레를 마시고나니 힘이 솟구쳤다. 집채같은 바위돌도 공기돌 처럼 다룰 수 있었고 하늘 찌르는 로송(老松)도 밭고랑 넘듯하였다.

그날 저녁에 약속과 같이 공주가 왔다. 백장수는 너무도 반가와서 '공주님!'하고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간 고생이 많았겠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공주의 얼굴에는 친절한 웃음이 넘실거렸다.  이튿날까지 석달 열흘동안 옥장천의 샘물을 마신 백장수는 백두산마루에 올라가서 삽으로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삽이 얼마나 컸던지 한삽을 파내서 던지면 하나의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일어섰다.  그가 열여섯삽을 떠서 동서남북으로 버렸더니 16봉이 생겨났고 움푹하게 패인 밑바닥에서는 지하수가 강물처럼 솟구쳐올라왔다.

백장수와 공주는 너무도 기뻐서 서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포옹하였다.  이윽고 겨면쩍은 생각이 든 백장수는 공주를 풀어놓으며 말하였다. '공주님! 소인이 너무 경솔하였으니 용서하길 바라옵니다.'  공주는 생긋 웃으며 '아니, 무릎은 왜 꿇고있나이까? 어서 일어나셔요.'하고 귀밑을 붉혔다.

그때였다. 졸지에 광풍이 일며 먹장구름이 삽시간에 하늘을 덮었다.  동해에 나가서 룡왕의 딸을 희롱하던 흑룡은 백두산에 큰물이 났다는 급보를 듣고  부랴부랴 날아왔던 것이다. '웬놈이 게서 물줄기를 텃느냐? 당장 내 칼을 받아라!'  흑룡은 불칼을 휘두르며 땅이 들썩하게 울부짖었다.   백장수는 추호의 겁도 없이 흰구름을 잡아타고 만근도(萬斤刀)를 휘두르며 응전하였다.

흰구름과 검은구름이 마주치자 뢰성이 울부짖고 하늘땅이 진동하였다.  공주는 기회를 엿보며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불칼을 휘두르는 흑룡은 하나의 은덩어리 같았다.  백장수와 흑룡은 아무리 싸워도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들이 싸움에 여념이 없을 때 공주는 흑룡을 향하여 련속 단검을 던졌다.  단검들이 꼬리를 물고 류성 처럼 흑룡을 향하여 날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백장수를 당하기 어렵겠다고 여기던 흑룡은 단검까지 련속 날아들자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백장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만근도로 흑룡의 불칼을 힘껏 내리쳤다. 쟁강! 소리와 함께 불칼이 뭉청 끊어져서 땅에 떨어졌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흑룡은 삽십륙계 줄행랑을 놓아 동해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흑룡을 이긴 백장수와 공주가 백두산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흙구뎅이에 많은  물이 꽉 차서 넘실거리였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천지가 되였다 한다.   백장수와 공주는 흑룡이 다시는 백두산에 와서 물줄기를 지져놓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천지속에다 수정궁을 지어놓고 살았다고 한다.

- 진청림으로부터 안도현 이도백하에서 81년 3월  리천록(연변)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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